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 (문단 편집) == 반전 == 사건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2000년대에 [[유죄]] 판결을 받았던 학생들의 일부가 재심 청구를 했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르고 영장도 없이 다짜고짜 경찰에 의해 끌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끌려간 뒤 당연하다는 듯이 거짓 자백할 때까지 [[구타]] 등의 [[고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70년대는 한국의 [[반공주의]]가 21세기보다 굉장히 강했던 시절이었다. 이렇다보니 자연스레 남북간 교류보다도 [[일본]]과 [[북한]]의 교류가 더 활발했다. 실제로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 중에도 북한을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당시 일본에서는 [[민단]]이건 [[조총련]]이건 별로 구분 없이 잘 지냈다는 것이다. 물론 간부급에서는 서로 반목하고 싸우는 일이 있었고 두 단체의 통일을 위해 [[한민통]] 같은 단체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재일교포들은 인간적으로는 가까이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중앙정보부는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를 이용했다. 조총련 사람을 만난 것, [[조선학교]]에 가 본 것, 북한의 선전물을 접해 본 것 등 별의별 사소한 것을 다 엮어서 집어넣었다. 물론 이러한 재일동포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이들의 간첩이고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당시 중앙정보부는 이러한 사실에 착안해서 이들을 미행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뭔가 이상하거나 수상쩍다 싶거나 하면 그냥 간첩 혐의를 뒤집어씌워서 끌고 온 것이다. 끌려온 학생들은 어느 순간 이들도 모르는 사이에 간첩단의 [[간부]]가 되있거나 [[약혼]]녀와 같이 동시에 끌려와서 둘 다 간첩으로 몰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문을 통한 거짓 [[자백]]으로 이러한 것들이 다 사실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유학생들은 아무리 명문대생이었다지만 법정에서 능수능란하게 변론하기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한국 사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에 이용당하기 딱 좋은 상황일 수 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